스가랴 요약

muzige 2016.10.07 10:47:00  조회  3,023

스가랴 요약

 

A. 스갸랴 개관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지닌 스가랴이다. 스가랴는 구약성경에만도 29명 이상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다. 스가랴는 잇도의 후손인데, 잇도는 포로 시대 이수에 유다로 돌아온 제사장들 중에 한 명이었다. 따라서 잇도의 손자인 스가랴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선지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스가랴서의 후반부인 9-14장은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혹자는 슥11:13마27:9,20을 인용하면서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헬라 시대 또는 마카비 시대의 어떤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의 전반부(1-8장)는 스가랴의 초기작이요, 후반부(9-14)는 그의 말리 작품으로 보고 있다.
 
2) 시대적 배경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스룹바벨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스가랴서의 내용이 전반부(1-8장)와 후반부(9-14장)로 나뉘어지듯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인 1-8장은 학개 시대와 동일하다. 즉 주전 538년에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본국으로 귀환한 이들은 주전 536년부터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여러 가지 방해로 2년(B. C. 534년)만에 공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로 하여금 성전 재건 공사를  독려케 하여 주전 520년에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주전 516년에 성정 재건 공사가 끝마치게 되었다. 이때가 전반부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인 9-14장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다만 주전 480-470년경으로 다리오 1세가 물러나고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앞에서 언급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즉 전반부(1-8장)는 주전 520년경 학개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두 달 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가랴 7장은 주전 518년경 기록되었다. 따라서 전반부(1-8장)는 주전 520-518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후반부(9-14장)는 슥9:13에 헬라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수 십년이 지난 주전 48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약간은 다르다. 전반부에 있어서 첫 번째 기록 목적은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의 성결한 신앙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 이들은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영적인 무관심과 율법의 무지 그리고 도덕적인 불의한 삶이 심각한 문제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그들의 성경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성전 재건을 중단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셋째로 성전 완공은 메시야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의 임재하실 처소를 마련하는 성스러운 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의 기록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메시야의 왕국의 승리와 영광을 마음속으로 간직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의 특징으로는 첫째로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많은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순 (슥3:8 ; 슥6:12), 종(슥3:8), 목자(13:7), 왕, 제사장(6:13)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주활 승천 이후에 있을 복음의 부흥(슥12:10-13:1),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과 메시야의 통치 그리고 하나님 왕국에 관한 예언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가랴는 마치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신약에 있어서 메시야를 언급할 때에 스가랴서를 많이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구원받은 자의 삶의 윤리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가랴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죄씻음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롭고 영화롭게 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동시에 구속받은 성도의 신앙이 삶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슥7:9,10 ; 슥8:16,17). 셋째로 본서는 요한계시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세론에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본 서의 말씀을 30개 정도로 인용하였다. 스가랴서의 말세론은 '그 날'로 언급된 여호와의 날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은 성도에게 구원의 날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날이다. 동시에 본 서에는 메시야 왕국과 메시야의 통치를 언급하면서, 새 예루살렘이야말로 성도들이 거처할 영원한 낙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2) 내용 구성
본 서의 내용은 크게는 두 부분, 적게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나눌 때 전반부는 1-8장까지로 회개에의 촉구와 여덟 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부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한편 본 서의 내용을 네 부분으로 나눌 때 첫 단락은 슥 1:1-1:6까지로 서 조상들처럼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두 번째 단락은 슥1:7-6:15로서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환상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단락은 7,8장으로서 금식 문제에 대한 벧엘 사람들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네 번째 단락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메시야에 간한 거부와 메시야의 통치에 대해 두 번의 경고를 하고 있다. 
루터(Luther)는 생전에 스가랴서에 대하여 모든 예언서의 정수라고 설명하였다. 이만큼 스가랴서는 예언으로 가득 창 있는 심오한 진리의 말씀이다. 특별히 본 서는 외적으로는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을 담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성전 자체에 담겨져 있는 의미 곧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풍부한 기독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본 서는 그리스도 나라의 완성에 대해 우리들에게 참된 소망을 던져 주고 있다. 이처럼 메시야 왕국과 그의 통치에 대한 영광스런 소망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새롭게 심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 어두워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새 힘을 가져야 하겠다.

 

B. 스갸랴 세부 내용

1. 주요 내용

핵심내용 : 내가 시온을 질투하리만큼 사랑하고 긍휼을 갖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1:14-16, 8:2-3).

1) 7개의 환상(1-6장)

*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쉽다.
* 역경이 닥친 때의 가장 큰 위험은 가까이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 당시에도 사람들은 그 당시의 상황만을 바라봄으로 실망하고 있을 때에 스가랴는 환상을
통하여 멀리 바라볼 것을 바랬다.

①붉은 말을 탄 사람(1:8-17)
주가 다시 예루살렘을 질투하리만큼 격렬하게 사랑하고, 그 자신의 언약의 백성을 학대한
제국의 백성을 벌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슥1:14-16)

②네 뿔과 네 명의 工匠(공장)(1:18-21)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1:21).

③척량 줄을 손에 쥔 젊은 자(2장)
예루살렘이 크게 번성하고 주께서 불 성벽이 되어주시고 그 가운데 영광이 되신다(2:4-5).

④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 우편에 선 사단(3장)
귀환한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의 불의가 제해지고 예복이 입혀지며
머리에 관이 쓰워진다.(3:3-5) 이어서 장래에의 약속이 주어진다.

⑤금 촛대와 두 그루의 감람나무(4장)
성전재건을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이 제해지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전이 스룹바벨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4:6-10) 이 환상은 특히 스룹바벨을 격려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⑥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에바안에 있는 여인(5장)
두루마리는 지상의 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나오는 "저주"이다. 사악한 것이 제거되지 않으면
주의 축복은 있을 수 없다.

⑦네 병거와 여호수아의 면류관(6장)
네 대의 전차는 신속하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상이다. 주의 심판의 대행자로서 나아 가는 것이다. 심판과는 대조적으로 대제사장 여호와의 머리에 관이 씌어진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주께서 이방에는 심판을 내리시고 예루살렘에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는 사실을 본다.
) 백성들의 올바른 자세와 삶(7-8장)

①7개의 환상과 7-8장을 합치해 보면 7-8장의 스가랴의 메시지가 매우 적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계속되고 있다(슥8:1-3).

②잘못된 금식제도(7:4-7)
B.C586년5월7일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념하여 금식하였고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이를 계속할 것인지를 묻는 물음에 하나님은 형식적인 금식보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7:6-7) 진실되이 행할 것을 말씀하심.(8:16-17, 욜2:12-13)
3)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9-14)

이 부분을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예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열방의 심판과 시온의 축복(9-10)
"내가 유다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버림이 없었음같이 되리라.(슥10:6)

(2) 메시야의 수난(11)

(3) 시온의 궁극적 승리(12-14)

① 초림

㉮ 예루살렘 입성
"시온의 딸아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 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이 말씀은 마태복음 21:1-11에서 성취되었고 그는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심
으로써 그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 은30에 팔리심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 거
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2-13) 여기서 은 30은 종의 몸값
이었다(출21:32)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은 30에 팔리셨고(마26:15), 모욕적으로 정해진 이 몸값도 이 말씀대로 팽개쳐졌다. (마27:3-10).


㉰ 예수님의 죽으심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13:7)


㉱ 창에 찔리심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12:10)
이 예언은 십자가상에서 못 박히시고 창으로 허리를 찔리심으로 성취되었다.(요19:37) 또 이것은 이스라엘이 전 3년 반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 앞으로
성취될 것이다

② 지상 재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슥14:4)

다시 오시는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러 오십니다. (계19:11-16, 시2:9, 계12:5)

믿는 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날

C. 스갸랴 내용 분석


 

I. 공상(fantasy)과 환상(vision); 환영(illusion)과 환상(vision)

  하산 길에서 만난 이들은 너그럽다. 산 아래 신작로에서 만났다면 그저 ‘너와 나’였을 사람에게 감히 경계 없는 눈길과 나긋한 말을 건넨다. ‘나’를 내어주고 ‘우리’로 받는다. 산상체험이 그리 만들지 않았을까. 아등바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삶의 현장이 까만 점들로 까마득히 박혀 있는 풍경은 또 하나의 진실 앞에 나를 세운다. 그것은 자기외면이나 현실도피가 아니라 시각교정이다. 눈감은 진실이던 현실 ‘저편’에 대한 응시(凝視), 그것을 통한 개안(開眼), 그리고 다시 눈뜬 진실이던 현실 ‘이편’에 대한 새로운 전망 획득이라는 회심을 거친 이들에게, 세파에 찌든 얼굴로 헉헉대며 올라오는 이들이 어쩐지 짠해 보이고 불현듯 달리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믿음은 달리 보는 것이다. 하늘의 눈으로 땅을 보는 것이고, 영원의 눈으로 순간을 보는 것이고, 생명의 눈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시인의 정념(pathos)으로 사는 것이고, 선지자의 영감(inspiration)으로 사는 것이다. 나 밖에서 내 안을 보는 것이고, 내 뒤에서 내 뒷모습을 보는 것이다.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공상(fantasy)이나 환영(illusion) 아닌 환상(vision)을 안고 사는 것을 말한다. 공상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지만, 환상은 주어져서 받는 것이다. 그러니 공상은 결국 현실을 외면하고(탈현실,脫現實)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내 꿈에 지나지 않지만, 환상은 있는 그대로의 암울한 현실뿐 아니라 주어진 시각으로 새롭게 비친 현실(초현실,超現實)도 고스란히 수용하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공상은 중독과 권태를 낳지만, 환상은 참된 위로와 다시 일어설 담력을 준다.


  부흥(revival)은 공상을 벗고 환상을 입는 것이다. 뼈아픈 현실로부터 도망하지 않고 재 가운데 베옷을 입고 현실을 뛰어넘는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환상을 품고 환상을 사는 마음으로의 회복이 부흥인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과 피조물과 이웃을 향한 지으신 이의 ‘본 뜻’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곳에 쉼이 있고 샬롬이 있고 고른 숨쉬기가 있다.


  스가랴는 점점 더 조여오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제와 그에 따른 유대 지도자들의 역량 축소, 기근으로 말미암은 경제적인 곤란과 사회적 빈곤의 심화, 그리고 성전 건축을 재개한 지 2달이 지난 뒤 눈 앞에서 드러나는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이나 바벨론에서 그들이 보았던 말둑의 성전에 비해 그 외양이 형편없이 초라한 데서 오는 실망감 등 복합적인 이유로 힘겨워하던 ‘절망의 시대’의 선지자였다. 동시에 그는 성전을 짓겠다고 삽은 들었지만 여전히 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부정한 짓을 자행하던 ‘이중성의 시대’의 선지자였다. 그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환상’이었고 ‘부흥’이었다. 쓰디쓴 현실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했다. 그러니 달갑지 않은 오늘을 외면하지 않되 매몰되어서도 안 되었다. 그들에겐 산상체험이 필요했다. 자기 밖에서 자기를 보고 현실 너머의 눈으로 현실을 봄으로써 ‘오늘’의 의미를 되찾아야 했다. 스가랴서는, 짓다 만 성전이 상징하듯 낙담하고 좌절하여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영광스런 포부를 환상(visions)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저 건물 속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 수도 있는 인간적인 열심을 차단하여 그들을 성전에 대한 공상이나 환영에서 건져내고, 다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온전한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주도적으로 시작하신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당한 반응(회개)을 요구하는 책, 그것이 스가랴서다.

II. 시대적 배경

주전 586(7)년 유다를 삼킨 (신)바벨론은 50년도 못 되어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망한다(주전 539년). 고레스는 예루살렘을 애굽 정복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그 다음 해(538년)부터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손에 들려 이스라엘을 본토로 돌려보낸다. 이미 바벨론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누리던 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약 5만 명 정도만 귀환한다(스 2:64).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은 이스라엘은 귀환 직후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성전 뜰의 제단을 복구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은 후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스 3:2-10). 귀환한 자들은 자기 삶을 재건하는 일에 먼저 관심을 기울였고(학 3:1), 귀환자와 남은 자 사이에 소유권 때문에 생긴 갈등도 적지 않았다. 원래 성전을 보았던 이들이 건설 중인 성전이 보잘 것 없다는 말에 낙심하기도 했다(스 3:12-13; 학 2:3; 슥 4:10). 급기야 예루살렘의 페르시아 관료와 결탁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만다(주전 535년, 스 4:1-5). 그 이후 15년이나 건축이 중단되다가 우여곡절 끝에 성전 건축이 재개된 상황(학 1:15)에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각자 다른 시각에서 성전 건축을 독려하여 신앙공동체 중심의 나라로의 재건을 도모하였다. 학개는 노련한 행동가로서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권면으로 독려한 반면에, 스가랴는 추상적이고 넓게, 환상을 통해,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학개가 성전 건축이라는 가시적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스가랴는 그 성전이 지니고 있는 내면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즉 성전의 참 의미는 그 외적인 위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있다고 말한다.


III. 구조와 내용

스가랴서는 크게 내용과 저작 시기에 따라 1-8장과 9-14장으로 나눈다. 전반부는 성전에 임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열방을 심판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8개의 환상을  통해 성전건축 독려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성전 중심의 공동체에게 다가올 영광스런 미래와 악에 대한 심판을 소개함으로써 의기소침해 있는 이스라엘을 격려할 뿐 아니라, 성전 건축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의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궁극적인 공동체상(像)이 무엇인지 밝히신다.


I. 성전을 재건하라(1-8장)

  1. 회개촉구(1:1-6)

  2. 8개의 환상(1:7-6:8)

  3. 여호수아의 왕관과 왕이 된 ‘순’(6:9-15)

  4. 헛된 금식과 예루살렘의 회복(7-8장)

II. 여호와의 전쟁과 여호와의 날(9-14장)

  1. 첫 번째 신탁(9-11장)

  2. 두 번째 신탁(12-14장)


IV. 스가랴서의 주요 메시지

1. 환상과 예언: 하나님의 임재와 회복의 소망

여덟 환상(1:7-6:8) 중 처음 다섯은 구원을, 마지막 셋은 심판을 다루고 있다. 환상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성전건축을 독려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환상은 지금 유다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회복의 목표임을 보여준다(1:16). 따라서 성전 재건이 비록 작은 일일지 몰라도(4:10), 그들이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예루살렘의 불성곽이 되시고(2:5), 성소에서 일어나시며(2:13), 자신의 신을 통해 성전 건축의 장애물들을 제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4:6-7).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으로, 여호와의 산은 성산으로 불리고(8:3), 흩어진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열국도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하여 성곽 없는 촌락이 될 것이며(8:6-8, 20-23; 2:4),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8:19).


2.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스가랴의 공동체는 과거와 미래 사이, 이미 이룬 구원과 아직 남은 구원, 이미 시작된 성전 건축과 아직 완공되지 않은 성전 건축 사이에 살고 있었다. 이 짓다 만 성전(4:9)은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더 온전한 회복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상징한다. 포로 귀환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무조건적 안전은 없다. 앞선 세대에게 요구했던 회개와 순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구원과 심판(포로됨)을 결정했듯이(1:2-6), 돌아온 자들이 정결케 되어 여호와와 신실한 관계를 맺는지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7:8-12), 은혜 베풀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그분이 미워하는 것을 피하며 살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다(8:14-17). 자기 백성을 성결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는 여호수아에게 더러운 옷 대신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한 관을 씌우는 환상(3:1-5), 예루살렘 거민을 정결케 하는 샘(13:1), 온 땅의 삼분의 일이 불로 연단되고(13:9)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기물들이 여호와의 성물이 되는(14:20,21) 예언을 통해 드러난다.

 

3. 메시아의 나라: 회복의 나라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여호와께서도 돌아와 친히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1:3). 열국을 보내거나 물리치심으로써 예루살렘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세우실 평화의 나라는 모든 민족까지 포함하며(3:10; 9:10) 천하에 그의 왕권이 미칠 것이다(14:9). 그의 나라에는 양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목자(11:1-3, 8)와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거짓 선지자(13:2-6)가 설 자리가 없고, 이스라엘을 에워싼 열국이 멸할 것이다(12장). 하나님의 왕권을 구현하여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메시아적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공의롭고 겸허하며(9:9), 배척을 받고(11:1-4), 심지어 찔림을 당하는 존재로서(12:10), ‘순’으로 상징되는 다윗과 같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지만,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닌(4:6; 9:9)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겸할 것이다.


4. 신약과의 관련

종말론적인 메시아를 통한 심판과 구원을 다룬 스가랴 9-14장은 복음서 저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사역, 특별히 그분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사건의 예언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겸허한 평화의 왕으로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연상시키는 스가랴 9:9 말고도 다음과 같이 스가랴는 예수님의 사역을 풍성하게 반향하고 있다.

∙슥 9:9-10     겸허한 왕         마 21:4-5; 요 12:15

∙슥 11:12-13   배반당한 목자      마 26:15; 27:9

∙슥 12:3       건축자의 버린 돌   마 21:44

∙슥 12:10      찔림 당함         요 19:37

∙슥 13:7       매를 맞는 목자     마 26:31; 막 14:27


V. 우리 시대를 위한 메시지

  먹고 살고 집 짓는 데 열중하느라 참된 경배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그 시대가 오늘 우리와 무척 닮았다. 스가랴는 한쪽 눈으로는 당대의 현실을 보고, 다른 쪽 눈은 늘 종말론적인 구원을 내다보고 있다. 이미 시작된 그 구원의 약속,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보여준 하늘 영상이 눈앞의 초라한 성소를 영광스럽게 보이게 했고, 세상에 코 박고 사는 나를 초라하게 하였고, 하늘 음성을 외면하고 목자를 거절한 백성의 눈에서 큰 애통을 쏟아내었다. 하나님의 구원을 고작 은 삼십(노예 몸값)의 값어치 정도로 생각하니 감격도 열정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11:13). 지금 모두들 백 년 전 선배들의 부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 땅이 심어준 헛된 망상과 공상을 재 가운데 회개하고 하늘 환상과 약속을 의지하여 나그네와 객의 삶으로 나섰던 그분들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싶다. 그분들처럼 실제로 버리고 포기하고 바꾸지 않은 채 산뜻한 부흥 공식에만 충실한 기획된 열정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과 구원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낙망하거나 머뭇거리는 나와 우리 시대를,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하늘 영상을 통해 위로하시고 각성하시고 도전하신다. 이제 지친 어깨를 떠밀며 내려가라 하신다.

출처-두손선 교회



천만명 부동산의 꿈 카페 가입 환영







광고